제로 다크 서티... 제가 그 집을 발견한 계집애입니다. by 남선북마

하트로커보다 더 건조해진 캐서린 비글로우

이 영화의 오프닝은 화면없이 암전속에서 911테러 당시의 희생자들의 절박한 통화내용을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바로 2년후로 전환되면서, 주인공 "마야"와 CIA팀들이 빈라덴의 관련인물들을 통해 빈라덴의 행적을 잡아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방식이 주로 고문이라는게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포장되었던 CIA의 첨단 첩보력의 실상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랄까..
결국 10년에 걸친 집념어린 추적,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빈라덴 사살작전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흔히 보던 극영화의 방식보다는 다분히 다큐적으로 접근한 영화로.. 영화자체가 상당히 무미건조하고 단선적이다.
정보 분석과 관련자 심문을 통한 지루하면서도 집요한 빈라덴 추적이 주를 이루고 있어... 기존의 첩보 스릴러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액션을 즐길만한 장면도 마지막 헬기 습격씬밖에 없는데.. 이 씬 마저도 지극히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액션영화가 주는 쾌감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연출방법이 10여년간의 지루하고, 끔찍한 테러와의 전쟁을 체감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볼수 있겠다.

캐서린 비글로우에게 최초의 아카데미 여성감독상을 받게 만들어 주었던 전작 "하트로커"와 비교가 아니될 수 없다.
'하트로커'는 나에게, 2차대전 전장의 잔혹함과 처절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라이언 일병구하기'와 마찬가지로...
현대전의 삭막함과 피폐함을 실감케 해주었던 내 마음 속 열손가락에 꼽히는 명작이었다.
하지만,'하트로커'로 그녀의 스타일에 단련된 영화팬들에게조차도 영화적 연출이 극도로 절제된 이 영화 "제로다크서티"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하트로커'에서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긴장감이나 스릴을 느끼기는 힘들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하트로커'보다 더 삭막하고 건조하다.

그렇다해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속편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로 '하트로커'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영화이다.
근본적으로 두 영화는 '제임스'와 '마야'라는 '직업광인'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단한 신념도 없으면서.. 건조하게 정상적인 인간이 하기 힘든 직업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거기에 매몰되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만, 영화적 재미의 차이는 소재에서 오는 것이 큰 것 같다. '하트로커'의 폭탄 해제와 '제로다크서티'의 정보전이라는..
그래서 혹자들은 두 작품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을 잇는 주인공의 성별만 바뀐 연작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극적인 묘미보다는 극한의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연출

시종일관 다큐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접근하는 것치고는 집중력이 흐트려지거나, 지루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관점에 대한 거북함은 존재하지만..
이 건조한 영화를 가지고.. 일단 2시간 30분 동안 잡생각이 들지 않게 스크린 속에 몰입시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이러한 점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역량이라 봐야겠지..

많이들 회자되는.. 스텔스 헬기로 강하하여 빈라덴의 가옥을 습격하는 라스트 액션씬은 그야말로 리얼리티의 극치였다.
지금까지 여타 영화에서 보여준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사실적인 영상으로..극적인 쾌감보다는 실제작전을 최대한 재현하는데(삽질까지)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CIA의 자문으로 만들어진 영화속 첩보의 세계도.. 기존의 수많은 CIA 관련 영화들과 비교.. 사실성과 현장감이란 면에선 독보적이다.
예를 들면, 인공위성으로 빈라덴의 저택을 확인해놓고도, 실패의 후폭풍이 두려워 무려 1년동안 성공율 따지며 책임미루기 탁상공론만 하는 모습같은거..
장비가 아무리 첨단이라도 결국 그것을 다루는 것은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관료들이라는 것이 냉전시대에서 조금도 진보가 없는것 같았다.
이렇게 그 방면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내 두 눈에도 모든 장면들이 치밀하게 고증된 흔적들이 보였다. 
다만, 철저하게 고증한 결과, 그동안 헐리우드를 통해 미화되었던 CIA의 치태가 제대로 드러났다는게 좀 웃기다.

역사적 진실 공방을 따나서 이 영화에서 보여준 그 긴 런닝타임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연출능력은 전작에서 좀 더 한발짝 더 나아간듯 보인다.
전작 '허트 로커'에 이어 또 다시 이런 문제작을 내놓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이제 거장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마야'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빈라덴을 사살하고 그 시체를 확인한 후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마야는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경력을 묻던 국장의 물음에 고교졸업 후 CIA에 들어와 10년 동안 줄곧 빈 라덴 쫓는 일만 했다는 그녀의 대답과 더불어
마지막 씬에서의 눈물 한 줄기가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마야"는 분명 주인공이지만, 투철한 목적의식이나 사명감은 없어 보였다.
또한 복수를 위해서 빈라덴을 잡으려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빈 라덴을 잡는것이 직업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렁같은 이 일에서 한발짝 물러나려는 그녀의 선임이나 상관과는 정반대로.. 그녀는 오히려 더 병적으로 집착해 간다.
빈라덴을 잡는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된 것이다. 그 외에는 그녀의 인생에 아무것도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촛점은 빈라덴 사살작전보다는 주인공 "마야"의 행적이 있다. 그 행로에 빈라덴이 있을 뿐이다.
영화상에는 마야의 사생활에 대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CIA에 들어오기전에 무엇을 했는지, 가족은 있는지, 업무외 시간은 무엇을 하는지.. 마야가 어떠한 인간인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오로지 빈라덴을 추적하는 마야만이 존재하며, 그외의 마야의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빈라덴을 사살하고 기뻐 날뛰는 네이비씰 대원들과는 달리, 마야는 빈 라덴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히려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당황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순히 마야가 희생된 동료의 복수를 위해 행동하였다면, 빈 라덴을 사살작전을 완료하고..그렇게 허탈한 표정으로 울지 않았을 것이다.
왜 다른대원처럼 단순히 기뻐할수 없는지.. 왜 기대했던 감흥이 아닌 이런 이상한 감정이 밀려오는지..
귀국 비행기안에서의 마야의 눈물이 무슨 의미인지는 본인조차 모를 것이다.


PS 1. 모 평론가가..'브리핑 받는듯한 느낌'의 영화라고 평하였는데, 가장 공감가는 평이다.

PS 2. '제로 다크 서티'는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을 지칭한 군사용어로 타겟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에 침투한다는 의미.
           실제 빈라덴의 은신처에 당도한 시간이기도 하다

PS 3. 마야라는 캐릭터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여러 증언과 CIA 요원들을 합쳐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한다. .

PS 4. 마지막 빈라덴 습격 작전에 나온 스텔스 헬기는 실제 존재하지만, 디자인이 공개되지 않아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PS 5. 이 영화에는 3초가량 고문장면에 삭제가 있다..
          그리고, 고문을 옹호하는 영화라고 욕을 먹기도 했다. 실제 중요단서도 고문으로 얻고, 딱히 그로인해 문제가 되거나 반성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일관되게 취하는 태도를 생각해 볼때, 고문에 대한 어떠한 시각을 보여줄려고 했다기 보다는..
          단지 그러한 사실이 있었기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충실했다고 본다.
          감독이 '마야'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떠한 인간적인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건조하게 그녀의 일만 쫓아가면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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