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친절한 인디아씨 by 남선북마



Emily Wells "Becomes The Color"

온전히 박찬욱제 영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다는 느낌을 함께 받게 만든다.
이번에 신작 <스토커>를 보면, 그러한 경향이 헐리우드에 가서도 여전히 유효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중세로 착각될만한 고풍적인 배경에. 흑백영화시대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인물들로 만들어진 괴상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박찬욱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와 음악를 능수능란하게 화면에 배치함으로서 특유의 방식대로 스스럼없이 영화를 풀어나갔다.

악마적인 '스토커'가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인디아 스토커)가..역시 같은 문제로 격리되었던 삼촌(찰리 스토커)이..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서서히 접근해 옴에 따라..
숨겨진 본능이 점차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진짜 자아를 발견하고.. 먹이사슬 꼭대기에 오르는 각성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로 읽혔다.
이러한 해석은 단순한 스릴러로만 보았을때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해석이고.. 사실 이런 해석보다 소녀의 성장 등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 해석 또한 많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직관적이면서도 상징적인 메타포어를 깔아놓아.. 관객들의 인지정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수 있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인디아'는 대사도 별로 없고 표정변화도 거의 없는 내성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인디아의 감정 변화를 관객들이 느끼게 하기 위해서 감독은 영화 곳곳에 이를 대신한 은유들을 배치해 놓았다.
기존의 박찬욱 감독의 팬이라면 감독 특유의 지적인 유희를 오랜만에 마음껏 즐길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안타까웠던 김지운감독의 헐리우드 데뷔작 <라스트 스탠드>와는 달리 온전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최근작 '박쥐'보다는.. 과거 복수 삼부작중 '친절한 금자씨'의 미장센을 연상시키는 면이 강하다.
이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은 헐리우드 제작 영화에 용병 감독으로 고용되어 데뷔작에 성공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는 수준을 아예 넘어서..
오히려 니콜키드만 등의 헐리우드 배우들과 이국적인 배경들을 박찬욱 영화세계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버린 느낌이 들 정도이다...
헐리우드에서 박찬욱을 감독으로 하여 만든 미국영화가 아니라.. 박찬욱이 헐리우드 시스템을 이용하여 만든 박찬욱영화이다.
데뷔작품에서 헐리우드에 경도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껏 자기편할대로 헐리우드 시스템을 사용하여..
완벽히 자신의 색깔대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박찬욱은 천재가 맞는 것같다.

엔트워즈 밀러가 스케치하고 박찬욱이 색채를 입혔다.

이 영화의 각본가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로 유명한 '엔트워즈 밀러'.. 각본만으로는 별 특별한 것이 없는 흔하고 평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단순하고 진부한 만큼 시나리오상의 빈틈이 곳곳에 보이는 각본이다.
실제로도 영화를 본 매니아들 사이에서 각본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각본 원본을 보지못해 확인을 할수가 없어도, 애시당초 복선과 반전이 캐릭터들과 엮이면서 절묘하게 전개되는 전통 스릴러라기보다는..
인물의 기괴한 개성에 더 기대는 소설 같은 시나리오였으리라 생각된다.
박찬욱 감독도 여백이 많아 자신의 색으로 칠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좋았고,인물 묘사에서 특히 뛰어난 각본이라고 칭찬한 점을 보면.
애초에 이 영화가 지향한 바는 범죄스릴러라기보다는 인디아라는 소녀의 각성을 다룬 성장담이었을 것이며,
연출 역시 앞뒤가 딱딱맞는 이야기 전개보다는 인물의 심리변화를 따라가면서 그 양상을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데 더 집중한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모호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박찬욱 감독은 감독의 연출능력으로 영화자체를 어떻게까지 바꿀수 있는지 한수 보여준다.
한씬 한씬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와 공간을 철저히 이용한 씬의 배치..
피곤할 정도로 심리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자극적인 색감과 촬영..
현실과 상징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교묘한 화면 전환..
모든 장면에 박찬욱적인 연출의 정수를 모아놓아 그야말로 눈이 호강을 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자극보다는 면도날에 베이는 듯한 예리한 긴장감으로 극중 내내 관객들을 자극시킨다...
독특한 분위기 이외에 이야기 자체는 평범했던 각본의 한계를..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으로 뛰어넘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연기와 음악 어느 면에서도 모자람이 없다.

외국인 감독이 연기지도를 한다는 애로사항에도 불구..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도 좋고 각자의 연기 역시 매우 뛰어나다.
특히 사람들이 지적을 많이 하는 남자주인공 찰리역 '매튜 굿'의 연기도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아주 괜찮았다고 본다.
연기력의 여부를 떠나서.. '매튜 굿' 배우 자체가 주는 캐릭터가.. 정체나 그 내면세계를 파악하기가 불사가의한 극중역할 찰리의 위험해 보이는 이미지에 잘 부합했다.
사실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최민식같은 광기어린 살인마보다.. 예의바른 정상인 행세하는 이런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는게 훨씬 더 난해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시종일관 예의 바르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그런 행동이 어색하고.. 수면아래 잔혹함이 언뜻언뜻 비치는 느낌을 정확히 잘 표현했다.

여주인공 인디아의 '미아 바시코브스카'도 말할 것도 없이.. 기계처럼 무표정하고 무정해보이는 인디아의 캐릭터에 이미지가 딱 맞는다.
남,여주인공의 캐릭터가 평소에는 정상인처럼 행세하고 있는.. 일반적인 감성이 결여되어 있는 캐릭터이다 보니..
연기로 그것을 표현하기보다는 배우들의 비주얼이나 분위기로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것 같다.

니콜키드만의 경우 포스터에서 보듯이 세 주인공중 하나로 홍보되고 있지만, 사실 찰리와 인디아 두 남여주인공보다 한급 떨어지는 조연이라고 봐야겠다.
두 사이코패스 사이에 놓여 헤매이는 상황속에 빠진 일반인 역할로 자기배역에 맞는 튀지않는 연기를 노련하게 해주었다.
두 광인사이에서 존재감이 완전히 죽어 버릴수도 있는 배역인데도...둘사이의 간격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은근히 소화해주는 내공을 보여준다.

또한 인상깊은 것으로 연출의 한 부분으로 사용된 음악, 사운드 트랙이 매우 휼륭하다.
'블랙스완'의 음악감독이었던 '클린트 멘셀'은 블랙스완에서 소녀의 불안한 심리를 음악으로 잘 묘사하였는데, 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라스트 씬 이후 엔딩롤이 올라오면서 나오는 엔딩곡 'Becomes the Color'는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창의적이면서도 탁월한 선곡이었다.
음악과 함께 화면에 뿌려지는 가사를 음미하면서.. 마지막 엔딩롤에서까지 박찬욱 감독의 완벽주의가 스며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엔딩롤이 올라가는데도 꼼짝 않고 한곡을 다 듣고서야 일어나는 우리나라 관객들은 오랜만에 보았다.. 그만큼 인상적인 곡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친절한 금자씨'를 가장 좋아하는 나에게 이 <스토커>는 환상적인 영화였다..
'엔트워즈 밀러'의 각본에 대해서 말이 많아 걱정했는데.. 그런 선입견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이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마음에 든다.
한장면 한장면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을 들여 만든.. 속이 꽉꽉 채워진 영화로..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맛이 진해질 것 같은 영화이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헐리우드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일차원적인 단순한 사실보다..
이제 박찬옥 감독이 앞으로..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세계가 더욱 더 넓어졌다는 생각에 더 기쁘다..

PS 1.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
           첫 살인을 방조한 뒤 샤워실에서의 그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씬이 아닐까.. 충격을 받은줄 알았더니 성적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니..
           이 장면이 원 각본에 있었는지.. 박감독의 독창적인 개입인지 상당히 궁금하다.

PS 2. 무표정한 여주인공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 문득 배두나가 생각나 버렸다.
           국내판을 제작한다면 인디아역에 배두나가 적격일듯..

PS 3. 극중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계속 남아있다..
           인디아의 생일 선물은 누가 보냈는지.. 찰리가 보냈다면 마지막 생일선물의 열쇠는 무슨 안배인지..
           찰리는 인디아의 존재와 본성을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아버지가 인디아에게 사냥훈련을 시킨 의도는 무엇인지..
           블루레이의 감독 코멘트가 기대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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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타누키 2013/03/04 00:51 # 답글

    1. 방조가 아니라 손을 잡아당기면서 같이 죽였으니 카타르시스를 느낄만 하죠.
    3. 미드 덱스터처럼 찰리의 잔혹성을 본 리차드가 인디아를 보고 찰리를 떠올려
    어려서부터 컨트롤 훈련을 시킨게 아닌가 싶습니다.
  • 남선북마 2013/03/04 01:03 #

    참 그리고 인디아 다리사이를 기어올라가던 거미가 몇차례 계속 나왔던 것도 생각나네요..
    점점 더 높은 신체부위로 올라가던데.. 인디아의 본성이 어느정도까지 벗겨졌는지 바로미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에반 2013/03/04 02:01 # 답글

    저도 아버지가 인디아를 훈련시킨 이유는 타누키님의 의견과 비슷해요 ㅎ
    덧붙이자면 아버지인 리차드는 자신의 가족에게서 최대한 찰리를 떨어뜨려놓으려고 애썼는데, 혹시라도 찰리가 접촉하는것을 대비하여
    인디아를 준비시켜놓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히려 색을 입힐게 많은 각본이라 박찬욱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나게 작용한거 같아요
    으 또보고싶네요 ㅠ
  • 남선북마 2013/03/04 02:08 #

    아내가 소외감을 느낄정도로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을 시켰으니 -.-
    결국 그 실력으로 찰리는 처리했지만,, 역시 그 실력으로 인간사냥하고 다닐 걸 생각하니 아버지의 안배가 반만 맞았네요..
  • 에반 2013/03/04 02:12 #

    ㅋㅋㅋㅋㅋ안배 ㅋㅋㅋ 그렇네요 ㅋㅋ
    생각해보면 굉장히 덱스터의 아빠랑은 대조되는 모습이네요. 인디아의 아버지는 딸에게 이 기술을 가르쳐주면
    정말 찰리만 막을거라고 생각한건지 ....ㅎㅎ

    근데 잔인한 정도를 따지면 악마를 보았다는 그리 높지 않지 않았나요?
    전 쏘우2보고 기절할 뻔 했는데 ㅠㅠ
  • 남선북마 2013/03/04 02:31 #

    사실 악마를 보았다나.. 쏘우는 비현실적이라 좀 여름 슬래쉬 무비 구경하는 느낌이죠.. 잔인보다는 징그럽다는 느낌..
    복수는 나의것은.. 우리네가 누구라도 겪을수 있는 안타까운 비극이고, 주인공들이 당해서...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체감 고통이 훨씬 커요..
  • 에반 2013/03/04 02:32 #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봐야겠군요 ㅎㅎ 도움말씀 감사합니다 ㅎ
    참고할게용^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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