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사랑의 완결 by 남선북마

영화가 시작되면 한 노부부가 클래식 콘서트에서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비춰준다.
돌아올 때는 차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보듬어주고, 집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서로의 옷을 벗는것을 도와주며.. 음악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제는 서로 간에 많은 말이 필요치 않는 오랜 세월동안 변치않는 사랑을 가꿔왔던 부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다가 아내 안느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이 멈췄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징조가 시작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남편은 평소 병원을 두려워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수술하도록 했다.
하지만, 성공률이 95%라는데도 수술이 실패했다. 아내는 반신마비가 되었다.

남편 조르주는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하지만 헌신적인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반신불수에서 전신마비로.. 이내 곧 정신마저 유아수준으로 퇴행되기 시작한다.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배설도 조절못하는 식물인간과 다름이 없는 처지에..
음악가 출신으로 자존심이 강한 아내는 몸과 함께 마음까지 병들어가고,
기어코는 입을 다물고 섭식마저 거부하면서 남편을 힘들게 한다..
남편은 출구가 안보이는 빛한점 없는 터널에 갇혔다.. 하지만 변함없이 점점 망가져가는 아내를 보살핀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많이 봐왔다.
대개 그런 사랑이야기는 첫 만남에서부터 사랑을 알콩달콩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그 시기가 가장 설레이고 아름답다고 느껴져서 그러리라..
동화 속에서는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고 끝을 내지만,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다.
두 사람은 함께 손잡고 아름답게 천국으로 걸어갔을까..
영화 아무르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다.
감정의 과잉을 철저히 배제한 체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사랑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런 지극히 사실적인 화법은 평소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에 취해있던 관객들을 보다 진지한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기 위한 장치이다.

전혀 기교를 보여주지 않는 롱테이크,
오로지 노인의 집 안으로만 한정된 무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배제된 배경음악,
오로지 두 노부부의 대화만이 선명히 부각되며, 둘 만의 이야기으로 영화는 가득 찬다.

이 영화 전반에 걸친 기운들.. 건조하고 냉혹하고 암울하고..
이 모든 것이 노부부가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을 관객들에게 여과없이 전달해준다.
그리고, 노부부의 일상에 서서히 스며드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실감케 해준다.
늙음과 질병은 부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점점 출구없는 구렁텅이에 빠트린다.
시간은 결코 아름다운 이별과 결말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은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영화는 고통받는 아내보다 그 고통을 지켜보며 간병하는 남편의 헌신과 그에 따른 고통에 더 촛점을 맞춘다.
아내의 고통은 이제 차라리 죽고싶어 할 정도가 되고, 지켜보는 남편의 절망 역시 더불어 눈덩이처럼 불어간다.
이제 아내와의 의사소통도 불가능해 나를 원망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수 없다.
이 악몽의 고리을 어떻게 벗어날수 있을까.

남편이 면도를 하고 있는데. 아내의 아파 아파 아파..하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말할수 없게 된 뒤로 가끔씩 내뱉는 단어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간호사의 말대로 반사작용일 뿐인지 남편으로서는 알수가 없다.
다만 달려가 손을 어루만져주고 달랠수 밖에 없다.
이날 남편은 아내를 달래면서 평생 해주지 않았던 유년기 캠프시절 이야기를 해준다.
어머니에게 캠프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편지를 보내자, 어머니는 즐거운 일이 있는 날은 반드시 있으니 그런 날에는  편지에 꽃을 그려보내라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그곳을 나올때까지 한번도 꽃을 그린 적이 없었다..
처음 듣는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아내도 잠잠해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남편은 베개를 들어 아내의 얼굴을 덮어 누른다.
숨이 막힌 아내는 계속 버둥거리다 결국 죽음에 이러렀다. 아내는 그렇게 죽는다.

이전에.. 아내가 물을 먹기를 거부하자 남편은 아내의 뺨을 때린적이 있다.
때리고나서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양이 평생 그런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남편이 아내가 생을 포기하자 분노해 손찌검을 한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편이 아내의 목숨을 거둔다. 남편은 살인자일까..

영화는 냉정한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노골적인 상징도 곳곳에 숨겨 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둘기이다.
모든 사건이 단 한번의 외출(마지막인)이외에는 노부부의 집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집안 구석구석 카메라의 눈으로 흝어주지만, 외부의 풍경은 심지어 창문 밖으로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이 노부부의 집은 둘의 완전한 사랑이자 삶 그자체 일것이다.
유일한 두번의 침입자가 비둘기이다.
비둘기는 아내의 병이 한참 진행중인 중반부에 열려진 창문으로 침입하고, 남편은 필사적으로 쫓아낸다.
그리고 아내가 사망한뒤 비둘기가 다시 한번 칩입한다.
남편은 한참을 실랑이 한 후 사로잡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놓아준다.. 이제 집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걸 깨달은 것이리라.

남편이 떠난 것은 그 다음날인것 같다.

남편 조르주를 연기한 장 루이 트레티낭은 1930년생이고,
아내 안느역으로 아카데미 최고령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엠마누엘 리바는 1927년생이다.
삶과 그 이후의 죽음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나이이다.
얼굴에 그득한 주름과 깊은 눈빛은 육체 연기가 보여줄수 없는 진실됨을 영화에 덧씌운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유행하는 노년역에 젊은 배우들을 노인으로 분장시켜 출연시키는 잡기로는 흉내낼수 없는 영역이다.

영화의 첫부분 노부부의 콘서트 외출씬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콘서트 무대를 비추는 대신에 청중석을 스크린 가득히 비춘다.
영화 관람석과 콘서트 청중석이 완전히 대칭을 이룬다. 마치 스크린이 거울로 만들어진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지금부터 이 노부부의 이야기는 당신들의 이야기라는 암시일까? 늙음과 시간은 누구도 피할수 없으니..

비둘기를 떠나보낸 후 남편이 집 한구석에서 선잠을 자고 있는데,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하고 부엌을 가보니..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설겆이를 하고 있다.
아내는 설겆이가 금방 끝나니 콘서트에는 늦지 않는다고 걱정말라고 한다.
아내는 이내 코트를 찾아 입고 남편을 재촉해 나간다. 콘서트에 늦겠다며. 남편에게 날이 추우니 코트를 꼭 챙겨입으라고 타박하며.. 남편은 어리둥절 따라나간다.
그렇게 두 노부부는 영원히 집을 떠났다.

몇 일후 소방관들이 집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그리고 몇 일후, 딸이 집에 들어와 이제는 아무도 없는 집 어딘가를 응시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거기서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아무 음악도 깔리지 않는다.

적막하고 공허하다. 마치 죽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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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제나 2013/01/17 18:58 # 답글

    이 영화 숨막힐듯이 감정을 조여오는데 이상하게 마치 정물화 보는 기분이어서 여운이 너무 많이 남더라구요. 부부가 보내는 집이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의 시간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구요...
  • 남선북마 2013/01/17 23:34 #

    조용하면서도 잔인한 영화이더군요. 너무 오래살아서 감정이 마모된건지.. 시종일관 감정이 절제된 남편의 모습이(심지어 숨을 끊는 순간에도..) 인상에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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